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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총아 RFID "기술인가? 재앙인가?"

유통총아 RFID "기술인가? 재앙인가?"

 

2030년 여름 부산 해운대의 바닷가. 해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한 피서객 앞으로 해안경비대원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봉지가 들려있었다.

"당신이 이 쓰레기를 무단투기했죠? 쓰레기에 박힌 태그를 분석해보니 이틀 전 당신이 산 물건이더군요. 벌금 10만원입니다."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무선주파수 인식기술인 전자태그(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가 생활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 경우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유통혁명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는 전자태그(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전자태그가 본격 적용될 경우엔 유통 뿐 아니라 생활 전 부문에서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인체에 칩을 이식하는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기밀 문서를 취급하는 법무부 관리들에게 칩을 내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RFID 사용이 확산되면서 부작용에 대한 경고 역시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바로 사생활 침해. 조지 오웰이 '1984'를 통해 경고했던 '빅브라더식 감시사회'가 도래할 것이란 암울한 경고마저 제기되고 있다.

전자태그는 과연 유통 혁명의 선두주자인가? 아니면 암울한 감시사회의 또 다른 첨병인가? 전자태그를 둘러싼 논란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 유통업체들의 기대 한 몸에 받는 RFID

RFID는 최근 정보통신부가 'IT 8-3-9 전략'에 포함할 정도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망 첨단기술산업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차세대 성장산업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유통업체들 역시 RFID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의 유통과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RFID는 그 동안 유통 현장을 지켜왔던 바코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쓰기 기능도 있어, 지속적으로 최신정보를 첨가해 기록할 수 있다. 또 옷에 부착해도 표시가 나지 않을 만큼 작기 때문에 각종 상품에 적용해 이동경로를 손쉽게 추적할 수 있다. 재고관리도 한결 수월해진다.

월마트, 베네통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들이 RFID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유통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RFID의 장점이다.

RFID는 일반인의 생활 속에서도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다. 칩 하나에 은행계좌, 카드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다양한 신분증을 손쉽게 대체할 수도 있다.

◆ RFID는 어떻게 작동돼나?

RFID 태그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태그 외에도 정보를 읽어들이는 판독기, 즉 스캐너가 있어야 한다.

RFID는 스캐너가 있는 곳에서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실시간 감시는 어렵다. 물론 스캐너가 곳곳에 많이 설치돼 있다면 실시간 감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팔이나 팔찌에 RFID 태그를 내장한 사람이 스캐너 근처에 접근하면 태그가 스캐너와 통신을 하게 된다. 태그는 배터리 유무에 따라 크게 배터리가 있으면 능동태그, 없으면 수동태그로 나뉘는데, 수동태그의 경우 스캐너가 먼저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스캐너와 태그 사이에 통신이 시작되면 스캐너에 있는 안테나가 태그에서 보낸 신호(정보)를 서버로 전송하게 된다. 태그 정보와 서버에 있는 정보가 일치하지 않으면 통신이 끊긴다. 서버에는 각종 태그를 통해 축적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태그에는 암호화기술이 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태그 정보를 가로채는 것도 가능하다.



◆ RFID 어디까지 응용되고 있나?

동물에 이식하는 RFID칩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한국애견연맹은 몇 년 전부터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애완견에 RFID칩을 보급하고 있다.

2만~3만원 정도면 고유번호가 내장된 RFID칩을 주사기로 간단히 주입하거나 캡슐형태로 주입할 수 있다. 현재 5천마리 이상의 애견들이 고유번호를 부여받았다.

특히 RFID태그가 인체에 적용되면서 보안이나 안전을 중요시하는 장소에서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를테면 교도소나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발전소, 병원 등에서 RFID태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TSI라는 회사는 미국 내 4개 교도소의 재소자 및 교도관들에게 RFID태그가 들어간 팔찌를 보급했다. 그 결과 주기적으로 재소자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등 재소자들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탈옥을 막게 됐다.

TSI의 그레그 외스터 사장은 C넷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RFID 추적시스템을 채택한 교도소에서 폭력사건 발생건수가 평균 60% 정도 줄어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며 "곧 이 시스템을 채택하는 5번째 교도소가 탄생할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7월에는 일본 폐기물관리회사 쿠레하가 일본 IBM과 손잡고 불법 의료 폐기물과 산업 폐기물 추적 테스트에 RFID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www.kopico.or.kr)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있는 알렉산드라 병원은 지난 해 봄,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사스(SARS)가 발생하자 사고 및 응급 부서에 RFID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병원의 모든 환자와 방문객, 직원들은 RFID 칩이 내장된 카드를 발급 받아 나중에 사스 감염자로 판명될 경우 감염자와 접촉한 모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즉시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다른 병원도 유사한 기술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 RFID가 등장하기까지

RFID 기술이 처음 개발된 것은 20세기 중반. 하지만 유통, 의료 등을 중심으로 상용화 방안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특히 1998년 영국 레딩대학의 인공두뇌학과 케빈 워웍 교수가 자신의 몸에 전파교신기가 내장된 컴퓨터칩을 이식한 이래 인체에 직접 칩을 이식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어플라이드 디지털 솔루션(ADS). ADS는 애완동물, 사람 등 생체에 이식하는 RFID태그로 유명한 회사다. ADS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잃어버린 애완동물의 추적을 위한 이식용 RFID칩을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5월에는 플로리다주에 사는 제이콥스 가족이 모두 ADS가 개발한 길이 12mm, 너비 2.1mm의 쌀알만한 크기의 '베리칩' 이식수술을 받았다. 이로써 '사이보그'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족은 신상정보 및 병력을 담은 칩을 몸에 이식해 응급상황이 생길 경우 재빨리 대처하기 위해 베리칩을 이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ADS의 리차드 실리그 부사장 역시 인체에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팔에 베리칩을 이식했다. 이후 지금까지 베리칩은 1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이식됐다. 생체칩 수요는 주로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더 많았다.

최근에는 멕시코 법무부에서 건물 출입통제 및 신원확인용으로 법무장관을 포함한 160명의 법무부 직원들에게 베리칩을 대량으로 이식한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 사생활 보호장치 없으면 '보이지 않는 감시자' 될 것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감시감독, 추적이 기본적인 목적인 RFID 기술이 확대 적용될수록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고스란히 공개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슈퍼마켓 프라이버시 침해와 번호부여를 반대하는 소비자모임(CASPIAN)의 캐서린 알브레히트 설립자는 "RFID태그가 판치는 세상에서 사생활 침해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우울한 의견을 내놨다.

최근 들어 생체이식 칩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이들의 우려는 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RFID칩의 생체이식을 꺼리는 것은 단순히 작은 금속덩어리가 몸 속에 들어오는 것이 불쾌하다'는 차원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묘사된 감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생체 적용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물건에 적용된 RFID칩으로 사람들을 추적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RFID칩 추적기능만 살아있다면 물건을 구입한 뒤에도 계속 추적할 수 있다. 소비자의 상품사용패턴까지 끊임없이 데이터베이스로 집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마케팅 전략에 적용하려는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기 때문.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소비자와 정보를 빼내려는 기업간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는 끝이 없을 전망이다.

◆ 한미일, 잇딴 규제 법안

RFID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확산되면서 사생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RFID를 채택한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정보가 수집될 수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RFID태그가 유통 및 결제과정까지만 유효하게 하고 대금 결제 후에는 스스로 파기되든가 소비자가 그 기능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RFID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올해 초 RFID 사용규제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유타주에서도 관련 법안을 만들어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방차원의 법안은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RFID 관련 지침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이 중심이 돼 RFID 사용과 관련한 초안을 완성, 조만간 공표할 계획이다. KISA 암호인증기술팀 권현조 연구원은 "관련기관들과의 협의를 통해 내용을 조율한 다음 올해 안으로 공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지난 6월, 총무성과 경제산업성 두 곳에서 RFID에 대한 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여기에는 RFID 도입으로 야기될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 RFID를 도입할 때 취해야 할 조치들을 나열하고 있다.

정보 해킹 위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RFID는 무선 주파수가 기반이 되는 기술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주파수를 포착해 정보를 빼낼 경우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다.

RFID는 기본적으로 위변조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있으나 기술이 더 발전하면 해킹을 통한 위조 RFID칩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아직까지 피해 사례가 보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용범위가 넓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이 점차 여러 분야로 확대되고 대규모로 사용될 경우에는 중간에 주파수를 가로채 해킹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현재 해킹을 막기위해 칩 내부에 암호화기술을 내장한 칩이 개발되긴 했으나 아직 크기와 무게면에서 상용화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한 상태다.

◆ 기술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이처럼 뚜렷한 장단점을 한 몸에 담고 있는 RFID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가히 최첨단 문명의 세례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볕이 강한 만큼 그늘도 강하다.

본격적인 'RFID 시대'의 언저리에서 선 우리는 지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과연 기술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를. 물론 둘 다를 포괄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어쩌면 그것이 첨단 문명의 또 다른 고민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김지연기자hiim29@inews24.com
2004년 0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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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122328&g_menu=020200&pay_new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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