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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48)
열정, 그리고 MS의 두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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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2일 월요일

열정, 그리고 MS의 두 프로그래머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6.5.19)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98을 만들 때 '월스트리트 데일리'지 기자가 취재차 방문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두 프로그래머를 각각 취재하면서 먼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첫번째 프로그래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매일 단조롭게 이런 쪼가리 프로그램만 짜고 있습니다. 왕짜증이지만 일은 일이니까 하는 거죠."
두번째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윈도98을 잘 만드는 일이지요.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윈도95를 훨씬 능가할 겁니다. 유저들이 대단히 흡족해할 겁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와 일에 대한 열정이 그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98을 만들 때. 한 신문기자가 프로그래머 두 명을 취재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첫번째 프로그래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매일 단조롭게 이런 쪼가리 프로그램만 짜고 있습니다. 왕짜증이지만 일은 일이니까 하는 거죠."

하지만 두번째 프로그래머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윈도98을 잘 만드는 일이지요.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윈도95를 훨씬 능가할 겁니다."

기자가 하루에 일은 얼마나 하며 급여에는 만족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첫번째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긴 저같은 프로그래머가 대단히 많고 월급도 비슷비슷합니다. 근무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합니다. 지각 안 하고 조퇴 안 하면 됐죠. 뭐, 솔직히 이런 따분한 일을 매일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두번째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무는 좀 오래 하는 편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중요하기도 하고 먼저 것보다 훨씬 나은 상품을 만들고 싶거든요. 그러자면 좀더 세심하게 일해야 하고 기술도 더 좋아야 합니다. 퇴근시간 지나서 몇 시간씩 더 일할 때가 많아요. 물론 제가 원해서죠. 새 상품을 만들 때면 늘 흥분되거든요."

두명 모두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첫번째 프로그래머는 부진한 실적으로 사직권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몰두한 두번째 프로그래머는 큰 업적을 남겼고 MS의 프로그램 설계팀 팀장으로 승진했다고 합니다.

일에 임하는 자세와 일에 대한 열정이 그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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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20년후엔 중국이 한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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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9일 금요일

리콴유... 20년후엔 중국이 한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한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6.5.19)

리콴유(李光耀·83) 싱가포르 전 총리(현 고문장관)는 18일 “20년 후면 중국이, 한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국씨티은행 초청 강연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도처에 퍼져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앞으로 중국은 일본의 5배 정도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한국 기업이 중국으로 적극 진출하고 있지만 10~20년 후면 오히려 중국이 한국에 투자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년후엔 中이 한국의 모든것 대체' 중에서 (조선일보, 2006.5.19)



"20년 후면 중국이, 한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전 총리가 어제 한 말입니다.
그는 중국은 앞으로 일본의 5배 정도의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우리의 몇배의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일까요.

리 전 총리는 또 지금은 한국 기업이 중국으로 적극 진출하고 있지만 10~20년 후면 오히려 중국이 한국에 투자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이미 한국경제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분야의 대기업(쌍용자동차)이 중국에 매각됐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훨씬 자주, 그리고 대규모로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지요.

변방의 작은 무역항이었던 싱가포르를 '일류'로 업그레이드시켰던 리콴유. 그는 우리에게 두가지 처방을 제시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도약하라." 싱가포르나 한국처럼 규모면에서 중국이나 일본, 미국 등 강대국에 밀리는 나라로서는 그들이 하지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며 성장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비슷한 것을 가지고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그는 "중국은 이미 다양한 벤처캐피털을 육성해 10억달러 이상의 큰 사업을 벌이고 있는 '빌 게이츠'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빌 게이츠처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편집증'적으로 경쟁상대가 따라잡을 수 없는 기술개발에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리 전 총리는 또 자주 충돌하는 노사관계를 언급하면서 "그런 공격적인 힘들이 조직화 됐을때 그런 에너지로 세계시장을 공략하면 한국은 틀림없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방적인 자세로 에너지를 외부로 돌려 해외시장을 공략하라는 조언입니다.
사실 우리사회는 최근 과도하게 내부로 움츠러드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가치인 민족주의도 편협해지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자국 지상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20년 후면 중국이, 한국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대체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20년도 남지 않았을런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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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도착하는 것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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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7일 수요일

일찍 도착하는 것의 중요성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6.5.17)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제때 도착하거나 일찍 도착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시간을 엄수한 덕택에 하루 일과를 준비하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할 귀한 시간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몇 분 정도 일찍 도착하면 일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내가 일정을 제어할 수 있게 되죠."

'시작시간'보다 단지 10분만 일찍 일터에 도착해도 숨 쉴 여유가 생긴다. 잠시 긴장을 풀고, 어떤 일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평가하고, 어디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지 결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팀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게 된다. 상사와 동료들은 당신이 시간을 관리할 줄 알고 따라서 더 큰 책임도 맡을 수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약속장소이건 직장의 사무실이건, 일찍 도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 나아가 일찍 도착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프로다움, 열의, 신뢰성, 타인 존중... 물론 지각이 주는 이미지는 이와 반대인 부정적인 것들이지요.

일찍 도착하는 것의 더 큰 장점은 사실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일에, 약속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어 주도할 수 있게 됩니다. 사무실에 일찍 도착한다면 그날 내가 할 업무들을 살펴보고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소중한 시간입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다면, 그 장소에 오기까지의 시간을 여유롭게 내가 원하는 곳에 쓸 수 있습니다. 늦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저자는 시간을 잘 통제하고 싶으면 '시간 쿠션'을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문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미리 시간의 여유를 만들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교통체증, 개인적인 응급상황 등 예기치 못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일들은 많습니다. 이런 것을 미리 준비해야합니다. 늘 10분 늦는 사람이라면 30분 먼저 출발하는 겁니다.

제 시간에, 나아가 조금 일찍 도착하는 '시간통제'.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소중한 시간을 가질수 있게 만들어주는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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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atility와 turbulence... 요동치는 글로벌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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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8일 목요일

volatility와 turbulence... 요동치는 글로벌 금융시장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6.5.18)

Fasten your seatbelts: we are encountering some unexpected turbulence.
After a long period of almost unnatural calm, volatility has returned across a wide range of asset classes.


'Leader: Getting used to more turbulent markets' 중에서 (파이낸셜타임즈, 2006.5.17)



'volatility'(변동성,휘발성)와 'turbulence'(난기류,소란).

최근 며칠 한국과 미국 등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런 상황을 'volatility'와 'turbulence'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예기치 않은 거친 풍파에 직면하고 있으니 '안전벨트'를 조여라"라고 조언하기도 했지요.
월스트리트저널도 최근의 주가하락에 대해 "투자자들이 지난주에 파티 모자에서 안전모로 갈아썼어야 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한동안 강세를 보이며 주가지수 1500선까지 돌파할 기세였던 한국증시는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12일,15일,16일 3일 연속 큰 폭으로 하락했다 17일 하루 반등했던 종합주가지수가 다시 오늘 40포인트 가까이 급락하며 1360선대로 주저 앉은 것입니다.

이는 최근 급락세를 보인 미국증시의 영향이 컸습니다. 미국은 4월 소비자물가(CPI)가 0.6% 상승으로 월가의 예상치(0.5% 상승)보다 높게 나오면서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CPI가 예상치를 웃돌자 물가상승 억제(인플레이션 방지)가 가장 중요한 임무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다음달 회의에서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금리가 오를 경우 지난 3년간 이어져 온 글로벌 증시 랠리가 막을 내릴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글로벌 증시가 호조세를 보여왔는데, 금리가 오르게 되면 상승엔진이 힘을 잃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금리상승은 주식시장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불안한 국제 원자재 수급동향,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 등이 겹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태풍이 몰아칠때는 힘든 시기가 한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지나놓고 보면 그 때의 느낌이 과했다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이번 글로벌 금융시장의 동요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오겠지요.

하지만 주요 외신들이 'volatility', 'turbulence'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최근의 금융시장의 불안이 어떤 원인에서 나온 것인지 논리적으로 명확히 이해하고 계속 주시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래야 국제금융도, 국내 금융도, 그리고 실물경제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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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단 하나, 선례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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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6일 화요일

포드...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단 하나, 선례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자본도 많지 않았다. 시작할 때 '유리하다'고 할 만한 것은 한 가지도 없었다. 거의 맨손이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다 우리가 일해서 벌어들인 것들이다. 사치품이었던 것을 가져다가 필수품으로 바꾸었다. 여기에 농간이나 핑계 따위는 없었다.

우리가 지금의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미국에는 좋은 도로도 거의 없었고 가솔린도 귀했다. 게다가 자동차는 부자들의 장난감일 뿐이라는 생각이 대중의 마음 속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단 하나, 선례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헨리 포드. 자동차는 부자들의 장난감일 뿐이라는 다수의 생각을 깨고 자동차 대중화라는 '새로운 고객',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1863년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의 농장에서 태어난 헨리 포드는 17살 때 농부로 살아갈 운명을 박차고 나와 디트로이트로 향합니다. 12살 때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엔진을 처음 본 뒤 농사가 아닌 기계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

그는 1903년 포드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고, 1908년 '모델T'를 만들어 자동차 산업을 석권합니다. 포드는 항상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부자들의 값비싼 장난감으로 생각할 때, 포드는 자동차를 '대중의 필수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쟁사들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대량생산을 통해 자동차의 대중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고객을, 시장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다수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습니다... 가격은 아주 저렴하게 책정하여 괜찮은 보수를 받는 사람이면 누구나 살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신이 창조하신 이 탁트인 멋진 야외에서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즐기십시오."

뜻과 아이디어와 열정은 있는데 자본이 없어서 인맥이 없어 좌절에 빠져있나요? 포드는 우리에게 "나도 거의 맨손이었다. 유리한 점이 있었다면 단 하나, 선례가 없다는 것뿐이었다"고 말합니다.
시장이 없어서 고민입니까? 포드는 이런 우리에게 "신상품을 위한 자리는 원래 없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선례가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 의미 있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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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상승?하락?절상?절하?... 환율 움직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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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15일 월요일

환율상승?하락?절상?절하?... 환율 움직임 이해하기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6.5.15)

 

환율의 상승은 뭐고 절상은 뭔지, 하락은 뭐고 절하는 또 뭔지, 환율 움직임에 대한 표현은 아주 헷갈리기 쉽다. 무엇보다 통화가치와 환율은 반대 방향으로 표시된다는 점에 유념하자.

원/달러 환율이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올랐다. 1달러에 1,000원 하던 것이 1,100원이 됐으니, 우리 돈의 값어치는 100원 떨어졌다. 환율은 상승했지만 원화 가치는 하락한 것이다.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절하'라고 한다.

반대로 달러당 1,100원에서 1,000원으로 환율이 내렸다면,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100원 올랐다. '절상'된 것이다.

결국 '환율상승= 통화가치 하락= 절하', '환율하락= 통화가치 상승= 절상'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채권가격과 금리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요즘 우리경제의 중요한 화두가 환율입니다. 환율은 그 나라 돈의 대외적인 가치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미국 물건을 사거나 투자할 때 원화가 미국 달러화에 대해 얼마의 값어치를 갖는지(통화의 교환비율)를 보여주는 것이 환율이지요.

그런데 지난번에 설명해드린 금리와 채권가격의 관계처럼, 환율의 움직임을 나타내주는 표현은 혼동하기가 쉽습니다.

쉽게 정리하면 금리와 채권가격의 경우처럼, 환율과 통화가치 역시 반대 방향으로 표현된다고 기억면 되겠습니다. 즉 환율이 상승한 것은 거꾸로 통화가치가 하락(절하)한 것이고, 환율이 하락한 것은 통화가치가 상승(절상)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요즘 원/달러 환율은 940원선. 이 환율이 900원으로 하락한다면,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올라간 것(절상)이 됩니다. 40원만큼 원화의 가치가 절상된 것이지요.

지금처럼 환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 수출업자가 많이 힘들어집니다. 그 구조를 간단히 살펴볼까요. 예를 들어 달러당 1,500원이던 환율이 1,000원으로 떨어졌다고 가정해봅시다. 환율이 1,500원이었던 시절에는 개당 10달러짜리 제품 하나를 수출하고 1만5,000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제 환율이 1,000원으로 떨어졌으니,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만원으로 줄어듭니다. 환율 때문에 가만히 앉아 이전보다 30% 이상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수출단가를 10달러에서 15달러로 올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미국의 수입업자들이 "너무 비싸다"며 수입물량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값이 싼 중국이나 동남아쪽으로 거래를 돌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손해를 감수하며 수출을 계속하느냐, 시장을 잃어버리느냐의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요즘 현대자동차나 소규모 수출업자들이 겪는 환율변동에 따른 애로가 바로 이런 구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환율 역시 금리처럼 약간 복잡하긴 하지만, 한번 명확히 정리해놓으면 헷갈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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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 스티브 잡스 - 스탠포트 졸업식 연설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이것은 2005년 6월 12일에 애풀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븐 잡스의 졸업식 연설문입니다.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저는 오늘 전세계에서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이번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온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제 삶에서 3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 얘기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컬리지를 첫 6개월동안 다닌 후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자퇴하기 전에 그 후 18개월동안 청강생으로 주위에 머룰렀습니다.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제가 태어나기 전 내 어머니(생모)는 젊고, 결혼도 하지 않은 대학 졸업생이어서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 졸업자에 의해 양자삼아주기 강하게 원하셨고, 태어나면 변호사와 그의 부인에게 입양되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내가 출생했을 때 그들이 여아를 정말 원한다는 결정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 스텐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계층인 부모님의 모든 돈이 내 대학 등록금으로 소진되었습니다. 6개월 후 저는 대학에서 가치를 발견치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뭘하고 싶은지, 어떻게 대학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에서 내 부모님이 전 생애를 통해 벌었던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를 결심했고,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순간은 무척 두려웠었지만, 뒤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그 순간 저는 관심 없었던 필수 과정들을 이수하지 않을 수 있었고, 관심 있어 보이는 과정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모두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도 없었고, 친구 집의 바닥에서 잠을 잤고, 먹을 음식을 사기위해 콜라병을 모아 5센트씩 모았고, 매주일 밤에 일주일에 한번 훌륭한(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헤어 크리쉬나 사원까지 기꺼이 7마일을 걷곤했습니다. 그 일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 많은 것들이 후에는 가치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당시에 리드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최고의 서법강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전 캠퍼스의 모든 포스터, 모든 서랍의 라벨은 아름답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자퇴하고 정규과정을 수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법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 서법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했고, 저는 serif[(M, H등의 글자에서상하의획에 붙인) 가는장식선, 세리프 ]와 san serif 서체를 배웠습니다. 즉 다른 글자 조합간의 총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서체를 멋지게 만드는 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저는 그것에서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이러한 어떤 것도 내 삶에서 실제적인 적용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처음 메켄토시 컴퓨터를 처음 디자인할 때, 그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에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활자(typography)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대학에서 그 과정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결코 다양한 서체와 균형 잡힌 자간을 띄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우스가 맥을 모방했기 때문에, 개인용 PC가 글자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이러한 서체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들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에는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후 뒤쪽을 돌아보니 아주 아주 명료했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말해서,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할 수 없습니다. ; 점들을 뒤쪽을 보면서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들이 어느 정도 당신의 미래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신뢰해야 합니다. 즉 실질, 운명, 삶, 카르마(인연, 숙명) 그 무엇이든. 이런 접근법은 결코 저를 낙담시키지 못했고, 내 삶의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 얘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제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을 빨리 발견했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2명에서 4000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최상의 창조물 -매킨토시-을 1년 더 빨리(29세에)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저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매우 재능있는 누군가를 고용했고 첫해 일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젼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나이 30세 해고를 당했습니다. 아주 공식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죠. 내 전 젊음을 집중했던 것은 사라졌고, 파괴되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저는 수개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 사업가들을 낙담시킨 것처럼 즉 내게 전달된 바톤을 떨어뜨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데이빗, 패커드과 밥 로이스를 만나서 일을 그르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공적으로 실패했고 심지어 벨리(실리콘?)에서 도망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제게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한 것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련의 사건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최선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를 제 삶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간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했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다음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인이 된 굉장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Pixar는 세게 최초 Computer animated feature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창조해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니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일련의 변화로 애플은 NeXT사를 샀고, 저는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NeXT에서 개발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에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멋진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꺼라고 확신합니다.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저는 환자에게 그런 약이 필요한 것임을 압니다. 때때로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치게 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저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 제가 한 것을 사랑하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일에도 진실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세요. 마음의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발견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관계처럼, 세월이 흐르면 점점 좋아지게 됩니다.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시고 안주하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17세였을 때 “매일 매일을 당신의 마지막 날처럼 사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당신은 가장 확실하게 내가 옳았어”와 같은 인용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 지난 33년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길 원하는가?”라고 자문합니다. 그리고 연속으로 많은 날 동안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될 때,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압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즉 제가 삶에서 큰(중요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우연하게 마주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 외부적인 기대들, 자신감, 창피함 또는 실패의 두려움- 이런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뭔가를 잃게 될꺼라는 생각의 덫을 피하게 하는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었고,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1년전쯤,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전 7:30에 정밀조사를 받았고, 분명하게 췌장에 종양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췌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이것은 치료할 수 없는 형태의 암이라는 것을 말해줬고, 저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음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제 의사는 집에 돌아가서 일들을 정리하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의사의 죽음에 대한 준비절차였습니다. “그렇게하는 것은 단지 수개월내에 제가 앞으로 10년동안 자녀들에게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아래에서 위까지)해서 가족에게 가능한 쉬운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그런 진단을 받고 하루종일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검사를 했습니다. 즉 목으로 들어가서 위를 통해서 창자속으로 들어가는 내시경을 했습니다. 제 췌장에 바늘을 넣어서 종양으로부터 세포 몇개를 취했습니다. 저는 차분했지만 함께 있던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검사하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특이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 건강합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것이 제가 죽음에 직면했던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이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것이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저는 현재 여러분께 죽음은 유용한 것이지만, 순수하게 지적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을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죽어서 그곳에 도달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대리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완전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독단에 빠지지 마세요. 내면의 소리를 소멸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 대 “The Whole Earth Catalog"라고 불리던 놀라운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세대에 바이블과 같았습니다. 그 출판물은 여기서 멀지 않은 Menlo park의 Stewart Brand라는 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그의 시적인 솜씨를 더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때는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탑으로 출판되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출판물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종이 형태로 만들어진, 구글이 사용되기 35년 전의 종이형태의 구글이었습니다. 이상적이었고 간결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들이 흘러넘쳤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스튜터트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를 수차례 발행했고, 그 과정을 개설하면서 최종본을 발행했습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저는 여러분의 나이였습니다. 그 최종본의 뒤쪽 커버에는 이른아침 시골 길 사진이 있었고, 만약 당신이 모험심이 강했더라면, 히치하이킹하는 당신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림 아래에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발행을 마치면서한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내 스스로를 그렇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현재 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

 

Thank you all very much.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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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Brainz...#1

예병일님이 발행하는 "예병일의 경제노트" 메일링 7월 18일자에 붙어서 온 전문과 번역문입니다. 번역에는 "예병일의 경제노트"의 식구인 춘천에 사시는 "김현중"님의 작품입니다. 다시 한번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원문인 경제노트 메일링글은이곳(http://blog.naver.com/mybrainz/140015177062)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문 원문은 스탠포트대학의 웹사이트중이곳(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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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Brainz...#2

동영상으로 졸업식 연설문 한번 들어 보실레요?


출처 : Stanford News Service
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videos/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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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Brainz...#3

아래 이미지들은 졸업식 행사 사진중 스트브 잡스 사진 몇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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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cement speaker Steve Jobs (holding documents) departs Stanford Stadium with, from left, the Rev. Scotty McLennan, Provost John Etchemendy and Board of Trustees Chairman Burt McMurtry, among other university officials.

(출처 :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slideshow/grad-061505-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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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the the Commencement address June 12, 2005.

(출처 :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slideshow/grad-061505-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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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stay hungry, stay foolish의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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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18일 월요일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stay hungry, stay foolish의 자세로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7.18)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학 학위수여식 연설문' 중에서 (2005.6.12)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내가 오늘 하려 하는 것을 하길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리고 "아니다"라는 대답이 여러번 나오면, 무언가를 바꿔야한다고 깨닫곤 했습니다.
그는 17세였을 때 “매일 매일을 당신의 마지막 날처럼 사세요"라는 글을 본 이후 매일 그렇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내가 '곧'(soon) 죽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1개월 후, 10년 후, 50년 후도 결국은 '곧'입니다), 세상은, 삶은 많이 다르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창피함, 헛된 욕심... 대부분의 고민들은 그 죽음 앞에서는 사라져버릴 것이고,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결정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대사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암스)이 학생들에게 벽에 걸려 있는 선배들의 옛 사진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모두들 젊고 당당한 모습들이지만, 지금 이들은 모두 죽어 흙이 되었다고.

스티브 잡스도 사회에 갓 진출하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생들에게 죽음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것(죽음)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하지만 멀지 않은 어느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표현이라 미안하지만 사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나의 내면이 원하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 접했던 문구를 소개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항상 배고프고 허기진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자. "이 정도면 됐다"고 안일하게 만족하며 지내지 말자.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작은 이익에 타협하지 말고 바보처럼 고지식하고 우직하게 살아가자.

매일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그리고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자세를 견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 *

1. 내일(19일 화요일) 저녁 7시 경제노트 오프라인 첫 모임이 열립니다.
등록해주신 300분께는 오늘 참석 확인 메일을 보내드렸습니다. 사정이 생겨서 불참하시는 분들이 많을 경우, 대기자로 등록해주신 분들께 순서에 따라 참석가능 메일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내일 모임에서 '자원봉사자'로 도와주실 수 있는 가족분이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0분 전에 오셔서 현장 안내를 도와주시면 되겠습니다.

3. 춘천에 계신 김현중 가족님께서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을 번역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김현중 가족님의 글을 보고, 오늘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아래에 번역문을 첨부합니다.
경제노트 가족들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서 번역을 해주신 김현중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

보내주신 내용의 전문을 읽다가 문득 번역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짧은 영어라 부분부분 좀 어색한 부분도 있을테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번 값진 글들에 감사하고, 101가지 비타민은 두고두고 보고픈 좋은 책입니다.
좋은 저녁되세요.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 이것은 2005년 6월 12일에 애풀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븐 잡스의 졸업식 연설문입니다. )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저는 오늘 전세계에서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이번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온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제 삶에서 3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 얘기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컬리지를 첫 6개월동안 다닌 후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자퇴하기 전에 그 후 18개월동안 청강생으로 주위에 머룰렀습니다.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제가 태어나기 전 내 어머니(생모)는 젊고, 결혼도 하지 않은 대학 졸업생이어서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 졸업자에 의해 양자삼아주기 강하게 원하셨고, 태어나면 변호사와 그의 부인에게 입양되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내가 출생했을 때 그들이 여아를 정말 원한다는 결정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 스텐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계층인 부모님의 모든 돈이 내 대학 등록금으로 소진되었습니다. 6개월 후 저는 대학에서 가치를 발견치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뭘하고 싶은지, 어떻게 대학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에서 내 부모님이 전 생애를 통해 벌었던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를 결심했고,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순간은 무척 두려웠었지만, 뒤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그 순간 저는 관심 없었던 필수 과정들을 이수하지 않을 수 있었고, 관심 있어 보이는 과정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모두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도 없었고, 친구 집의 바닥에서 잠을 잤고, 먹을 음식을 사기위해 콜라병을 모아 5센트씩 모았고, 매주일 밤에 일주일에 한번 훌륭한(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헤어 크리쉬나 사원까지 기꺼이 7마일을 걷곤했습니다. 그 일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 많은 것들이 후에는 가치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그 당시에 리드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최고의 서법강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전 캠퍼스의 모든 포스터, 모든 서랍의 라벨은 아름답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자퇴하고 정규과정을 수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법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 서법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했고, 저는 serif[(M, H등의 글자에서상하의획에 붙인) 가는장식선, 세리프 ]와 san serif 서체를 배웠습니다. 즉 다른 글자 조합간의 총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서체를 멋지게 만드는 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저는 그것에서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러한 어떤 것도 내 삶에서 실제적인 적용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처음 메켄토시 컴퓨터를 처음 디자인할 때, 그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에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활자(typography)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대학에서 그 과정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결코 다양한 서체와 균형 잡힌 자간을 띄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우스가 맥을 모방했기 때문에, 개인용 PC가 글자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이러한 서체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들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에는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후 뒤쪽을 돌아보니 아주 아주 명료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할 수 없습니다. ; 점들을 뒤쪽을 보면서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들이 어느 정도 당신의 미래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신뢰해야 합니다. 즉 실질, 운명, 삶, 카르마(인연, 숙명) 그 무엇이든. 이런 접근법은 결코 저를 낙담시키지 못했고, 내 삶의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 얘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제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을 빨리 발견했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2명에서 4000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최상의 창조물 -매킨토시-을 1년 더 빨리(29세에)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저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매우 재능있는 누군가를 고용했고 첫해 일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젼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나이 30세 해고를 당했습니다. 아주 공식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죠. 내 전 젊음을 집중했던 것은 사라졌고, 파괴되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저는 수개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 사업가들을 낙담시킨 것처럼 즉 내게 전달된 바톤을 떨어뜨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데이빗, 패커드과 밥 로이스를 만나서 일을 그르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공적으로 실패했고 심지어 벨리(실리콘?)에서 도망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제게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한 것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련의 사건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최선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를 제 삶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간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했습니다. )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다음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인이 된 굉장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Pixar는 세게 최초 Computer animated feature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창조해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니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일련의 변화로 애플은 NeXT사를 샀고, 저는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NeXT에서 개발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에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멋진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꺼라고 확신합니다.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저는 환자에게 그런 약이 필요한 것임을 압니다. 때때로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치게 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저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 제가 한 것을 사랑하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일에도 진실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세요. 마음의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발견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관계처럼, 세월이 흐르면 점점 좋아지게 됩니다.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시고 안주하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17세였을 때 “매일 매일을 당신의 마지막 날처럼 사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당신은 가장 확실하게 내가 옳았어”와 같은 인용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 지난 33년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길 원하는가?”라고 자문합니다. 그리고 연속으로 많은 날 동안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될 때,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압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즉 제가 삶에서 큰(중요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우연하게 마주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 외부적인 기대들, 자신감, 창피함 또는 실패의 두려움- 이런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뭔가를 잃게 될꺼라는 생각의 덫을 피하게 하는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었고,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1년전쯤,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전 7:30에 정밀조사를 받았고, 분명하게 췌장에 종양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췌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이것은 치료할 수 없는 형태의 암이라는 것을 말해줬고, 저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음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제 의사는 집에 돌아가서 일들을 정리하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의사의 죽음에 대한 준비절차였습니다. “그렇게하는 것은 단지 수개월내에 제가 앞으로 10년동안 자녀들에게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아래에서 위까지)해서 가족에게 가능한 쉬운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그런 진단을 받고 하루종일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검사를 했습니다. 즉 목으로 들어가서 위를 통해서 창자속으로 들어가는 내시경을 했습니다. 제 췌장에 바늘을 넣어서 종양으로부터 세포 몇개를 취했습니다. 저는 차분했지만 함께 있던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검사하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특이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 건강합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이것이 제가 죽음에 직면했던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이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것이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저는 현재 여러분께 죽음은 유용한 것이지만, 순수하게 지적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을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죽어서 그곳에 도달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대리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완전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독단에 빠지지 마세요. 내면의 소리를 소멸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 대 “The Whole Earth Catalog"라고 불리던 놀라운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세대에 바이블과 같았습니다. 그 출판물은 여기서 멀지 않은 Menlo park의 Stewart Brand라는 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그의 시적인 솜씨를 더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때는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탑으로 출판되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출판물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종이 형태로 만들어진, 구글이 사용되기 35년 전의 종이형태의 구글이었습니다. 이상적이었고 간결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들이 흘러넘쳤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스튜터트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를 수차례 발행했고, 그 과정을 개설하면서 최종본을 발행했습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저는 여러분의 나이였습니다. 그 최종본의 뒤쪽 커버에는 이른아침 시골 길 사진이 있었고, 만약 당신이 모험심이 강했더라면, 히치하이킹하는 당신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림 아래에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발행을 마치면서한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내 스스로를 그렇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현재 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 고맙습니다.)

춘천에서 경제노트 가족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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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의 안테나를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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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4일 화요일

호기심의 안테나를 세워라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24)

처음 기내에 비치된 잡지에서 메모리 폼 베개를 봤을 때 '이걸 어디다 쓰면 좋을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만약 그 때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와 트윈세이버는 없을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내가 본 잡지를 봤을 터이고, 또 수없이 많은 사람이 메모리 폼 베개 기사를 봤겠지만 그것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트윈세이버를 운영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절실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나는 항상 다니던 일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는 방법으로 생각의 전환을 시도한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가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항상 '호기심'의 안테나를 세워놓아야 합니다.
호기심은 세상에 대한 관심, 내 일에 대한 적극성의 다른 표현입니다. 어떤 일에든 '심드렁'한 태도와 정반대되는 자세입니다.

메모리 폼 베개를 만드는 트윈세이버 황병일 사장. 그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황 사장은 IMF 당시 부도를 맞아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1998년 단돈 45만 원을 들고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던 그는 메모리 폼 베개라는 사업 아이템을 찾았습니다.

1999년 개발을 시작했고 1년여만에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한 때 신용불량자였던 그는 2003년‘10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계기는 기내에서 봤던 한 잡지의 기사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그에게 새로운 길이 보였던 것입니다.

황 사장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다니지 않던 새로운 길로 돌아가곤 한다고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길, 환경을 걷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다는 것이지요.

호기심은 세상에 대한 관심, 내 일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이런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길'이 열리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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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비 트렌드, 트레이딩 업

새로운 소비 트렌드, 트레이딩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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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8일 수요일

새로운 소비 트렌드, 트레이딩 업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17)

전세계 중산층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지금 트레이딩 업이라는 새로운 소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트레이딩 업이란 중가제품을 주로 구입하던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가 품질이나 감성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비싼 제품에도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패턴을 일컫는 표현이다.

뉴 럭셔리 상품과 서비스는 일반 상품보다 품질, 품격 및 소비자가 느끼는 감정적 만족감의 수준이 훨씬 높고 가격은 고가로 책정되어 있지만 중가시장 소비자들이 구매가 가능한 범위다.

뉴 럭셔리 상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격-수요 곡선을 탈피해 있다. 그것은 가격은 높으면서 판매량도 높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트레이딩 업'이 소비에서의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를 잡을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겠지만, 이런 움직임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트레이딩 업이란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가 감성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가격이 비싼 제품을 기꺼이 구매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성적인 만족'과 '높은 가격'입니다. 소비자에게 감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면, 높은 가격대임에도 불구하고 물건이 더 많이 팔리는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일부 이런 트레이딩 업 소비를 하는 대신, 다른 대부분의 물건들은 대형 할인점 등에서 싼값에 구매를 합니다. '트레이딩 다운'입니다.
즉 실용성 위주의 트레이딩 다운을 통해 절약한 돈으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비싼 제품을 구매하는 트레이딩 업을 하는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당신도 지금 그런 소비행태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소비 트렌드는 기업에게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소비층이 생긴 것은 기회이지만, 평균적인 품질과 가격의 제품만 만드는 기업에게는 매우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올 겁니다.
트레이딩 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고품질의 제품과 트레이딩 다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매우 싼 가격의 제품. 이 두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 '평범한 기업'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트레이딩 업' 현상을 주목해야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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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자신에게 분노한다

리더는 자신에게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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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7일 화요일

리더는 자신에게 분노한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17)

20년 동안 GE를 멋지게 이끈 잭 웰치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분노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더 좋은 세상을 꿈꾸지만 그 꿈이 계속해서 실현되지 않을 때 화를 (대개는 자기 자신에게) 낸다.
그들은 현재의 상태에 대해 왕짜증을 낸다. 서쪽에서 떠오르지 않는 해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그들은 당장 뭔가 행동을 취하기로 결심한다.

'화나지 않은' 사람을 리더로 삼지 마라. 사실상 '화나지 않은' 사람을 아예 고용하지도 마라.
당신의 눈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이상적인 리더 후보다.
"이렇게 엉망인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바꿀 기회가 주어지면 기꺼이 책임을 떠맡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리더는 분노합니다. 아니 분노하는 사람만이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분노는 다른 말로 표현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입니다. 또 다른 말로는 '열정'
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짜증을 내는 '소인배'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람일 수록 오히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분노, 변화에 대한 의지, 미래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조직을 성공으로 이끌기 어렵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성공으로 이끌기도 물론 어렵습니다.

리더는 자기 자신에게, 현재의 상태에 분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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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포퓰리즘(populism)과 캐어(care)

리더의 포퓰리즘(populism)과 캐어(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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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3일 금요일

리더의 포퓰리즘(populism)과 캐어(care)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13)

인기에 영합하는 행동(Populism)도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의 하나다. 실패하는 리더들이 보이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인기나 호감에 연연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부하에 대한 따끔한 질책을 꺼리는 성격 좋은 리더들도 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인기주의에 영합하는 소극적 형태의 하나일 수 있다.

문제는 그 결과 부하들에게 성과에 대한 상벌을 명확히 하지 않는 경우처럼, 오히려 고성과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외적으로 성과를 내보이고 싶어하는 개인적 욕심 역시 장기적인 조직의 성과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노용진의 '리더십 실패의 함정과 성공의 지혜' 중에서 (LG경제연구원, 2005.5.6)
 
리더는 포퓰리즘(populism)과 캐어(care)를 구분해야 합니다.

리더의 포퓰리즘은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서건 그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후유증을 가져다 줍니다. 조직의 진정한 이익, 장기적인 목표가 아닌, 지금 인기를 끌 수 있는 일에 진력하는 리더. 당장은 조직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들에게 남는 것은 허망함과 좌표상실 뿐입니다.
리더라면 지금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기업이나 나라의 진정한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전력해야 합니다.

포퓰리즘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자세로 부하에게 따끔한 질책을 하지 않는 리더도 '인기영합'이라는 포퓰리즘에 빠진 리더입니다. 잘못을 해도, 태만해도 질책하지 않는 가운데, 다른 정상적이고 능력있는 직원들은 깊은 좌절에 빠집니다.

리더는 포퓰리즘에 빠져서는 안되고 조직원들을 캐어(care)해야 합니다. 직원이나 국민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필요로하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리더.
자기 개인의 인기가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항상 고민하기에 그는 조직에게 이익이 되는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포퓰리즘(populism)이 아니라 캐어(car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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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still hungry?

Are you still hu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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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6일 월요일

Are you still hungry?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16)

P&G의 최고 직원들은 명석하고 의견이 분명하며 일에 열심이고 의지가 굳으며 부지런하고 창의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특징을 한 가지로 집약해서 표현한다면, 이들은 승리를 갈구한다.

승리는 다음번에 대박을 터뜨릴 제품이나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만이 아니다. 물론 이것도 언제나 중요한 목표이기는 하다.
그러나 승리란 점진적인 성과, 전반적인 비용의 상당한 절감, 경쟁을 통해 라이벌의 몫을 뺏는 것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P&G는 직원들에게 경쟁적인 업무 태도를 장려해왔고, 작은 성과라도 꾸준히 이루어낼 수 있는 지원 제도 및 정책을 개발해왔다.



"I'm still hungry."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던 거스 히딩크.
얼마전 TV 화면에서 본 그는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배가 고프다는 자세로 일에 임하고 있습니까?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 있나요?

70, 80년대만 해도 우리는 '헝그리 정신'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으며 생활했습니다. 맨주먹 밖에 없는, 하지만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한 청년이 권투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도 보았고, 역시 헝그리 정신으로 가득 찬 학생이나 기업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커다란 성취를 하는 모습도 많이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우리는 이런 '헝그리 정신'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지 못하게 됐습니다.

평소에 승리를 갈구하는 사람만이 작은 성과, 점진적인 성과를 낼 수 있고, 그런 사람만이 커다란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Are you still hu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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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목표가 무엇입니까?

당신은 목표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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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6일 금요일

당신은 목표가 무엇입니까?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6)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집중력을 단련시켜 수많은 사건 속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먼저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자신의 에너지와 수단을 적절하게 분배시키는 데 집중한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겉으로만 중요해 보이는 진부한 것들을 보다 쉽게 포기할 수 있다. 또한 이때 수반되는 유혹에 대해 보다 쉽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목표가 뚜렷해야 집중력도 생깁니다. 그리고 무엇에 집중해야 기회도 보입니다.

목표가 뚜렷해야 여러가지 일들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한정된 나의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지요.

목표가 뚜렷해야 다른 것들을 포기할 수도 있게됩니다. 유혹이 말을 걸어와도 무시하기 쉽습니다.

목표가 뚜렷해야 동기부여도 됩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분명하게 앞에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뛰어들 수 있습니다.

목표가 뚜렷해야 어려움이 와도 극복하기 쉽습니다. 그래야 실패하더라도 스스로를 추스리고 다시 시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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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형 인간, 모루형 인간

망치형 인간, 모루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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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9일 월요일

망치형 인간, 모루형 인간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9)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망치가 될지 모루(단 쇠를 놓고 두드리는 판)가 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직장에서 기대할 것이라고는 월말에 송금되는 월급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일찌감치 모루로 만들어 버린 사람이다. 그의 머리 위로 일상이라는 망치가 가차없는 공격을 해댈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망치(보스)가 되기 위해서 위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직장생활에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생각해 낸 일을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대장간에 망치와 모루가 있습니다.
모루는 작업할 재료를 올려놓는 대(臺)를 말합니다. 모루에 재료를 올려놓고 망치로 두드립니다.

직장에서, 아니 인생에서 망치가 될 것인가 아니면 모루가 될 것인가.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신입사원 중에도 '망치'로 살아가는 사람과 '모루'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어진 여건속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 만들어 하는 사람이 있고, 그저 시키는 일, 주어지는 일만 처리하겠다는 자세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망치' 신입사원과 '모루' 신입사원의 미래는 당연히 엄청난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신입사원뿐 아니라, 팀장도, 임원도,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루가 아니라 망치가 되어봅시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망치형 인간'만이 보람과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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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움직이지 않는 거울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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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4일 수요일

리더, 움직이지 않는 거울 같은 마음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5.4)

'장자'는 이상적인 리더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경에도 불만을 품지 않고 영달을 기뻐하지도 않고 만사를 있는 그대로 맡기며 작위를 부리지도 않는다. 실패해도 걱정하지 않고 성공해도 의기양양해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말한다.
"마음은 거울 같은 것이다. 자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오는 것은 그대로 비추지만, 떠나버리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으며 또한 상처도 입지 않는다."




중국의 고전 '장자'.
'장자'에서 그려지는 이상적인 리더는 자신의 능력으로 천하를 제대로 다스리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무능하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무언의 설득력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리더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이상적인 리더상과는 일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장자'의 시각에서 배울 점도 많습니다.

리더는 역경에 부딪치거나 실패하더라도 걱정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도 의기양양해하지 않지요.
그런 리더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거울'입니다. 역경이 오건 성공이 오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또 그것들이 떠나버리면 또 없는 그대로를 비춥니다.

이런 흔들림 없는 리더의 자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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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땐 슈퍼맨의 망토를 펄럭이자

걸을 땐 슈퍼맨의 망토를 펄럭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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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5일 월요일

걸을 땐 슈퍼맨의 망토를 펄럭이자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4.25)

걸음걸이를 익혀라. 가장 좋은 방법은 등 뒤에 망토를 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펄럭이는 망토를 느끼며 걷는 것이다.

이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성큼성큼 걷는 방법으로서, 우리가 보여 주고 싶어하는 확신과 일관성에 제일 맞는 걸음걸이다.



올바른 걸음걸이.
깔끔한 외모, 품위 있는 옷차림 등과 함께 개인의 첫인상을 결정해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걸음걸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냅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걷는 것도 노력하면 익힐 수 있습니다.

로만 브라운이 제안한대로, 강한 인상을 주는 걸음걸이를 만들기 위해 '슈퍼맨의 망토'를 생각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슈퍼맨의 망토가 내 등 뒤에서 펄럭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성큼성큼 걸어보는 겁니다.
자신있고 강한 메시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겁니다.

* * *

안녕하십니까, 예병일입니다.

경제노트 오프라인 무료 세미나 모임의 장소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의견을 주셨습니다. 특히 장소후원 제안을 해주신 자바씨티 코리아, 한국생산성본부, 코트라 등에 계신 가족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좀 더 숙고해서 정기모임에 적합한 장소가 확정되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병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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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리프레쉬를 통해 효율을 높이는 사람들

짧은 리프레쉬를 통해 효율을 높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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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2일 금요일

짧은 리프레쉬를 통해 효율을 높이는 사람들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4.22)

나는 매일 낮잠을 자는데 그것이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방해되지는 않는다.
나는 심야 2시, 때로는 새벽 5시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식사하기 전이나 후에 잠깐 동안 누워 휴식한다. 비행기나 열차나 자동차로 여행을 할 때에는 15분 정도 잠을 잔다.

이렇게 하고부터는 수면 시간이 3시간 정도 줄었고, 전보다 건강해졌으며, 무엇을 하더라도 좀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 새벽이나 아침시간을 집중적으로 활용해 커다란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꾸로 남들이 다 잠든 밤 늦은 시간을 이용해 많은 일들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그 시간들이 각자에게 효율을 높이는데 적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깨어있는 시간 내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후 시간대에는 출근 직후의 상쾌함도 사라지기 쉽고 능률도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이겨내고 몸과 마음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자신만의 리프레쉬 방법'을 하나쯤 찾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랑스인인 저자는 낮잠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하루 15분씩 낮잠을 자는 것으로 오후 시간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게다가 일하는 시간도 새벽 2시, 때로는 새벽 5시까지로 늘릴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15분의 낮잠이 수면시간 3시간을 줄였다는 경험담입니다.
저자 말고도 '토막잠'을 활용하며 밤잠을 4시간 정도로 줄이고 많은 일을 이룬 유명인들이 많습니다.

그 방법이 15분간의 낮잠일 수도 있고, 15분간의 산책일 수도 있고, 음악감상, 또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에게 맞는 '나만의 리프레쉬 방법'을 찾아서 활용하면 시간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

경제노트 가족들의 오프라인 무료 세미나 모임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문의를 해오셨습니다. 행사 진행 자원봉사를 희망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모임은 장소만 확정되면 가급적 5월중에 시작하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간대는 평일(수 또는 목요일) 저녁 7시~9시 정도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노트 가족분들이 편하게 오실 수 있는 100~200명 수용 규모의 강의장을 물색하고 있는데, 아직 좋은 곳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갈 수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장소를 찾고 있는데, 장소가 빨리 정해지면 행사 시작도 그만큼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추천할 만한 모임장소가 있으면 메일이나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쾌한 봄 날, 항상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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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은 결과로 말한다

프로페셔널은 결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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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8일 월요일

프로페셔널은 결과로 말한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4.18)

프로페셔널 세계에서의 사람의 가치 평가는 기본적으로 '일의 성과'에 좌우된다.
부단한 자기계발과 인격도야에도 많은 힘을 쏟아야겠지만,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최고의 결실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진력해야 한다.


프로페셔널은 '결과'로 말해야 합니다. 냉정한 이야기이고 비정한 말이지만, 그래야 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푸근했던 시간들은 학교문을 나서면서 잊어야 합니다. 아마추어라는 단어가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상황이 있고, '미숙함'으로 이해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 두 상황을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한 기업의 CEO는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받을 수 없습니다. 인격을 갖춘 것만으로 실패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국민들을, 직원들을 편안하게 먹여살려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걸 '결과'로 보여주는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CEO만 그런 건 아닙니다. 부장, 과장, 신입사원... 그 어느 자리에 있던, 프로페셔널은 '결과'로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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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백만장자에게서 배우는 부자가 되는 길

미국의 백만장자에게서 배우는 부자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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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4일 목요일

미국의 백만장자에게서 배우는 부자가 되는 길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4.14)

내가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아내는 교사였습니다. 우리의 수입은 적었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항상 규칙이 있었습니다. 저축하는 것이었죠. 그때도 우리는 저축을 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첫번째로 해야할 일은 저축이지요.

11세 때도 나는 식료품점에서 일하고 받은 첫 봉급 50달러를 저축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현재는 동그라미의 수가 달라졌다는 것뿐이지요. 동그라미는 더 많아졌지만, 규칙과 원칙은 같습니다.







절약과 저축은 부자가 되기 위한 필수요인입니다.
반대로 '부자로 보이기 위해서', '즐거운 소비를 위해서'라는 목표로 일을 하는 태도는 부자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해주는 방해요인입니다.

토마스 스탠리 박사가 미국의 백만장자를 연구하면서 만난 한 부자는 "나의 원칙은 저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먼 옛날 11살 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 많은 돈을 벌고 있을 때도, 동그라미의 수만 달라졌을 뿐 그 원칙은 동일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스탠리 박사가 만난 백만장자 사업가인 앨런은 자신의 인생 목표가 '부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당신의 목표가 재정적인 안정이라면 당신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의 동기가 즐거운 인생살이에 쓸 돈을 버는 것이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규모는 각자 다르지만, 우리 주위에는 소비를 위해, 부자로 보이기 위해, 즐거움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재정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진정한 부자'가 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갈지는 너무도 명확합니다.

1. 당신 가족이 연간 의식주 비용으로 지출하는 액수가 얼마인지 알고 있습니까?
2. 당신의 재정적 미래를 계획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까?
3. 당신은 검소합니까?

스탠리 박사가 당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질문 모두에 "예"라고 답하셨습니까?

* * *

오프라인 경제노트 가족 공부모임 계획에 대한 따뜻한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틀 동안 이메일과 댓글을 통해 100분 가까운 가족들이 모임 진행에 '자원봉사 가족'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김현아님께서 강의장 제공 후원 의사를 밝혀주신 등 많은 분들께서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오프라인 무료 세미나 모임과 관련, 아래 내용에 대해 많은 의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모임진행 자원봉사
2. 강의장 제공 후원(100~200석 규모)
3. 기업 후원
4. 강의를 듣고 싶은 강사 및 주제, 세미나 희망 요일 및 시간대

가족 여러분들의 따뜻한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병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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